비전문적인 글들

  • 예비타당성조사 완화, 균형 발전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함정

    예비타당성조사 완화, 균형 발전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함정

    “※ 이 글은 비전문가가 쓰는 비전문적인 글이다.

    예비타당성조사, 흔히 예타라고 부르는 이 제도를 처음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를 기억하는 세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99년 외환위기 직후 도입된 이 제도는 단순히 관료들이 만들어낸 행정 절차가 아니었다. 나라가 사실상 부도 직전까지 갔던 충격 속에서, 정치인들이 선심 쓰듯 뿌려대던 대형 토목사업들이 얼마나 국가 재정을 갉아먹었는지를 뼈저리게 반성한 결과물이었다. 그 쓴 교훈이 제도로 굳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제도가 또 흔들리고 있다.

    ‘경제성보다 균형 발전’이라는 새로운 평가 기준이 예타에 도입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고,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도시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지역 주민 입장에서 보자면 “왜 우리 지역 사업은 늘 경제성이 없다고 잘리느냐”는 항변이 충분히 이해된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사람이 그 억울함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해와 공감이, 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예타의 핵심은 단 하나다. 국민의 세금을 쓰기 전에 ‘이 돈이 제대로 쓰이는가’를 냉정하게 따져보겠다는 약속이다. 경제성 분석이 완벽하다거나, 지금의 예타 기준이 불변의 진리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예타가 수도권 중심의 인구·교통 집중 지역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그 비판은 상당 부분 타당하다. 문제는 그 비판에 대한 해법이 ‘균형 발전’ 가중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귀결될 때다.

    균형 발전이라는 가치는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위험하다. 누구도 공개적으로 반대하기 어려운 가치를 앞세워 제도의 핵심 기능을 약화시키는 방식은, 정치의 세계에서 낯설지 않은 수법이다.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경제성 검토 비중을 낮추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경제성이 사실상 없는 사업들을 통과시킬 수 있는 문이 넓어진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가 채무로 쌓이고, 결국 지금의 젊은 세대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가 그 청구서를 받아들게 된다.

    여기서 잠깐, 다른 생각이 든다.

    최근 나온 기사들을 훑어보면 한국 경제가 사방에서 압박받고 있다는 신호가 넘쳐난다. 중소기업들은 원재료값이 매달 오른다고 비명을 지르고, 납사분해설비(NCC) 업체들은 역마진 쇼크에 공장 문을 닫는 것이 낫겠다고 절규한다. 선박 운임료는 폭등하고, 중동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재정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재정을 쓰는 데는 기회비용이 있다. 경제성 없는 지방 철도에 1조 원을 쏟아붓는 동안, 그 돈으로 할 수 있었던 다른 선택들은 사라진다. 노후 산업단지 재생이 될 수도 있고, 중소기업 기술 지원이 될 수도 있고, 저출산 대책이 될 수도 있다. 예타는 그 선택의 기로에서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을 담보하는 장치다. 그 장치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은 선택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압력이 합리적 판단을 밀어내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예타를 통과하지 못한 사업들 가운데 사후적으로 보면 충분히 타당했던 것들도 있다. 경제성 분석의 전제로 쓰이는 수요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과거 일부 고속도로 사업들은 예측 수요의 절반도 안 되는 차량이 다니고 있다. 예타가 만능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불완전함이 예타 자체를 약화시키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불완전한 도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아마도 그것이 더 어렵고, 더 오래 걸리고, 덜 표가 나는 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가려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균형 발전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예타 기준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수도권 집중이 왜 이렇게까지 심해졌는지, 지방이 자생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재정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철도 하나 놓는다고 지방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수십 년의 경험이 가르쳐준 사실이다. 사람들이 서울로 몰리는 이유는 철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일자리와 교육과 의료의 질 차이 때문이다. 그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사회간접자본을 깔아도 인구 유출은 멈추지 않는다.

    5호선 연장이니 위례신사선이니 하는 뉴스도 요즘 들려온다. 수도권 교통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지방 노선까지 경쟁적으로 밀어붙이다 보면, 결국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재정은 무한하지 않고, 국가 채무는 이미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 나라가 외환위기 때 배운 가장 쓴 교훈 중 하나는, 지금 당장 기분 좋은 선택이 나중에 얼마나 가혹한 청구서로 돌아오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교훈이 예타라는 제도로 굳어지는 데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 균형 발전을 원한다면, 그 교훈을 지워가면서 얻으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지금 이 논의가 어디로 귀결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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